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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비욘드를 두바이에서 봤습니다 — 화면 속 미래 도시가 전부 제 동네였습니다

by sharpjini 2026. 3. 11.

영화관에서 스타트렉 비욘드를 보다가 황당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스타베이스 요크타운의 웅장한 전경이 화면 가득 펼쳐지는데, 어딘가 낯이 익은 겁니다. 낯익은 정도가 아니라 출근길에 매일 지나치는 건물이 화면에 떡하니 나왔습니다. 메트로 정거장까지 보이는 순간에는 저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저거 두바이잖아"가 튀어나왔습니다.

주변 관객들 중에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두바이에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저스틴 린 감독의 스타트렉 비욘드 속 스타베이스 요크타운은 세트장에서 만들어낸 상상 속 공간이 아니라, 두바이 실제 건물과 거리를 촬영한 뒤 이를 토대로 재구성한 가상의 미래 도시였으니까요.


두바이 관광청이 직접 촬영지를 공개했습니다

두바이 관광청은 공식 사이트를 통해 스타베이스 요크타운의 실제 촬영 장소들을 직접 공개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두바이에 살거나 자주 다닌 사람이라면 "아, 거기!"가 절로 나오는 장소들입니다.

먼저 스타 플리트 본부 건물로 등장하는 곳은 두바이 국제금융센터, DIFC 안에 있는 다만 타워입니다. 리츠칼튼 DIFC 뒤편에 위치한 건물인데, 날렵하게 뻗은 외관이 미래 도시의 공공건물로 쓰이기에 제격이었겠다 싶습니다.

요크타운 안에서 물이 흐르는 수변 구역과 그 일대 건물들은 주메이라 레이크 타워스, JLT 워터프론트에서 촬영됐습니다. 호수를 끼고 여러 동의 고층 건물이 밀집해 있는 이 일대는 두바이에서도 꽤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지역입니다. 영화 속에서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묘사된 장면들이 실제로는 저 호수 주변을 항공 촬영한 영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니 새삼 흥미로웠습니다.

마찬가지로 DIFC 근처에 있는 센트럴 파크 타워스와 그 일대 건물군도 주요 촬영지였습니다. 두바이 국제금융센터 일대가 통으로 미래 도시의 배경이 된 셈인데, DIFC 자체가 유리와 철골로 된 현대적인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지역이다 보니 시각적으로 미래 도시와 잘 어울렸을 겁니다.

요크타운 전체의 스케일감을 보여주기 위한 항공 촬영에는 셰이크 자이드 로드와 그 주변 초고층 건물들이 활용됐습니다. 두바이 한복판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이 대로 양쪽으로 고층 건물들이 쭉 늘어선 풍경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자체로 이미 SF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알마스 타워도 잠깐 등장합니다. 두바이무역사업상품청 DMCC가 입주해 있는 이 건물의 최상층부만 클로즈업되어 화면에 나온다고 하는데, 특유의 다이아몬드 형태 꼭대기가 미래적인 느낌을 줘서 선택된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경마장으로 알려진 메이단 경마장도 촬영지 목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내부 공간이 주요 장면에 활용됐다고 하는데, 메이단 경마장 특유의 유선형 지붕과 넓고 높은 실내 공간이 미래 건축물의 내부로 둔갑하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두바이를 상징하는 건물인 부르즈 알아랍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돛 모양의 독특한 실루엣은 전 세계 어디서도 비슷한 건물을 찾기 힘든 만큼, 미래 도시의 랜드마크로 등장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올해는 북유럽에서 들여온 갑판을 바다에 설치해 담수풀과 해수풀 두 개를 새로 조성하는 확장 공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도입부에서 요크타운을 처음 보여주는 장면에 금색 지붕을 가진 타원형 건물이 나옵니다. 처음 봤을 때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는데, 알고 보니 두바이 메트로 정거장이었습니다. 두바이 메트로 역사들은 각 역마다 외관 디자인이 다르고, 그중에서도 황금빛 곡선 지붕을 가진 역들은 워낙 시각적으로 강렬합니다. 출퇴근할 때마다 그냥 지나쳤던 그 건물이 스크린 위 미래 도시의 상징적인 건물로 등장하는 걸 보니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르즈 칼리파를 중심으로 한 다운타운 두바이에서도 촬영이 이루어졌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중심으로 대형 쇼핑몰과 분수, 고층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이 지역은 두바이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 두바이였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세계에는 멋진 도시가 많은데, 왜 제작진은 두바이를 미래 도시의 배경으로 선택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맞물렸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건물 자체의 개성입니다. 두바이의 고층 건물들은 단순히 높기만 한 게 아니라 각자 뚜렷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타워, 알마스 타워, 부르즈 알아랍, 메트로 역사까지, 저마다 다른 형태를 갖고 있어서 여러 건물을 조합해도 각각의 존재감이 살아있습니다. 영화 속 미래 도시에 필요한 시각적 다양성을 두바이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었던 겁니다.

다른 하나는 도시 구조입니다. 두바이는 도시 전체가 균일하게 개발된 곳이 아니라, 고층 건물군이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구조입니다. 셰이크 자이드 로드, DIFC, JLT, 다운타운처럼 초고층 클러스터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구조가 항공 촬영으로 담았을 때 섬처럼 떠 있는 미래 도시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냈을 겁니다.


엔딩 크레딧에 두바이 엑스포 로고가 뜬 이유

영화 엔딩 크레딧 마지막에 2020년 두바이 엑스포를 비롯한 두바이 관련 로고들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뜬금없다고 느낄 수 있는데, 앞선 내용을 알고 나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두바이 관광청과의 협력 아래 도시 전체를 촬영 무대로 제공한 셈이니,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건 기본입니다.

두바이에 살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 미래 도시가 일상 속 익숙한 풍경에서 탄생했다는 걸 확인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꽤 특별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면서 주변 건물들을 올려다보는 눈이 잠깐 달라졌습니다. 어떤 건물이 다음번엔 또 어떤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할지,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도시가 두바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