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마리나를 걷다 보면 가끔 이곳이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초고층 건물들, 그 사이로 오가는 배들, 물 위에 반사되는 불빛들을 보고 있으면 원래 이 자리가 모래벌판이었다는 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누군가 심시티를 너무 열심히 했다는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두바이 마리나에는 이 풍경을 물 위에서 즐길 수 있는 수상 교통수단이 여럿 있습니다. 워터 버스, 워터 택시, 그리고 오늘 소개할 두바이 페리가 그것입니다. 이전에 워터 버스를 타봤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디 어드레스 두바이 마리나에 묵고 있던 참이라, 숙소 근처 두바이 마리나몰 수상 교통 정류장에서 페리를 타기로 했습니다.
페리 노선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두바이 페리는 시간대에 따라 운행 노선이 나뉩니다. 두바이 마리나에서 데이라의 알구바이바까지 이어지는 편도 노선과, 팜 주메이라 중심의 아틀란티스 호텔을 찍고 돌아오는 왕복 노선이 있습니다. 노선이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하면 탈 수 없는 구조라, 사전에 시간표를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데이라까지 갔다가 두바이 마리나로 돌아오는 건 번거로울 것 같아, 가볍게 바닷바람이나 쐬어볼 겸 팜 주메이라 왕복 노선을 선택했습니다. 요금은 50디르함입니다.
페리는 워터 버스와 다른 물건입니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다 페리가 들어오는 걸 보는 순간, 워터 버스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워터 버스가 통통하고 아담한 느낌이라면, 두바이 페리는 길고 날렵한 형태입니다. 아브라를 업그레이드한 버전이 워터 버스라면, 페리는 그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간 느낌입니다.
내부도 워터 버스보다 훨씬 현대적입니다. 1시간 안팎을 운행하는 노선이다 보니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습니다. 화장실이 있고, 간단한 스낵을 파는 카페 코너도 있습니다. 스낵 코너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긴 합니다만, 긴 항로라면 나름 요긴한 공간입니다.
출발, 두바이 마리나를 한 바퀴 돌아 바다로 나갑니다
팜 주메이라 왕복 노선은 두바이 마리나몰을 기준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를 도는 구조입니다.
출발하자마자 카얀 타워를 비롯한 두바이 마리나 초고층 건물군이 양쪽으로 펼쳐집니다. 땅 위에서 올려다보던 것과 물 위에서 바라보는 것은 확실히 느낌이 다릅니다. 운하를 따라 지나가다 보면 관광용 도우 선박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두바이 마리나 초창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그로스베노르 하우스 쌍둥이 호텔도 스쳐 지나갑니다.
그렇게 마리나 안쪽을 지나 드디어 아라비안 걸프로 나섭니다. 이란과 UAE 사이에 있는 이 바다는 이름부터 논란입니다. 이란 쪽에서는 페르시안 걸프, UAE에서는 아라비안 걸프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동해와 일본해 표기 문제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두 나라는 바다 이름뿐 아니라 작은 섬 세 개의 영유권을 놓고도 현재 진행형으로 갈등 중입니다. UAE가 갑작스럽게 11월 30일을 순국자의 날로 제정한 배경에도 이 섬 분쟁이 있습니다. 현재는 이란이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UAE는 원래 자국 영토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UAE에 살고 있으니 아라비안 걸프를 건너봅니다.
바다에서 보는 두바이는 또 다른 풍경입니다
페리 후미는 실외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어 바닷바람을 직접 맞으며 주변을 볼 수 있습니다. 오후 늦게 탄 덕분에 서쪽 바다 위로 해가 지는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구름이 제법 멋지게 걸려 있었고,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갔습니다. 두바이에서 여름에 이런 하늘을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어서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페리 노선은 팜 주메이라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훑고 지나갑니다. 인공섬답게 팜 주메이라에는 고층 건물이 거의 없어, 두바이 마리나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2020년 두바이 엑스포를 앞두고 새로운 호텔 건설이 계속되고 있는 모습도 바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듯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두바이 마리나 스카이라인도 달랐습니다. 촘촘히 들어선 초고층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파노라마는 땅 위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시각입니다. 어느 순간 하늘에 달도 모습을 드러냈고, 구름과 석양과 달이 한 화면에 담기는 풍경은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습니다.
반환점, 아틀란티스 더 팜
한참을 달려 반환점인 아틀란티스 더 팜이 멀리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팜 주메이라 끝자락에 자리한 이 호텔은 멀리서 봐도 존재감이 뚜렷합니다. 페리 노선상 가까이 접근하지는 않지만, 해가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 실루엣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아틀란티스 더 팜 옆으로는 팜 주메이라 동쪽에 더 로얄 아틀란티스 더 팜이 건설 중인 모습도 보였습니다.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은 이 건물은 기하학적인 외관 디자인으로 완공 후 팜 주메이라의 또 다른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돌아오는 길, JBR과 블루워터 아일랜드
반환점을 돌아 두바이 마리나로 돌아가는 길에는 JBR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JBR에 가까워질수록 건설 현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현대건설이 짓고 있는 아인 두바이, 아랍어로 두바이 아이라는 뜻의 세계 최대 관람차 건설 현장이었습니다. 최고 높이 200미터가 넘어 런던 아이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이 관람차가 들어서고 있는 인공섬 블루워터 아일랜드도 한창 공사 중이었습니다.
JBR 끝자락 더블트리 호텔 옆에 빈 공간이 눈에 띄었는데, 이 자리도 이미 에마아르가 새 호텔을 짓겠다고 발표한 상태입니다. 디 어드레스 두바이 마리나에 이은 두 번째 디 어드레스 브랜드 호텔인 디 어드레스 비치프론트 리조트가 들어설 자리입니다. 두바이에서 빈 땅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그렇게 잠깐 맡아봤던 바닷내음을 뒤로하고 출발지인 두바이 마리나몰 정류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번쯤 타볼 만한 이유
두바이 마리나를 걸어서 둘러보는 것과 물 위에서 바라보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경험입니다. 워터 버스가 운하 안쪽을 천천히 훑는 느낌이라면, 페리는 마리나를 벗어나 바다로 나가 도시 전체를 멀리서 바라보는 시각을 줍니다. 50디르함이라는 요금이 아깝지 않은 풍경입니다.
특히 해질 무렵에 탑승하는 쪽을 권합니다. 낮의 선명한 스카이라인도 좋지만, 석양이 지고 도시에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그 경계의 시간에 바다 위에서 두바이를 바라보는 건 꽤 특별한 경험입니다. 두바이 마리나 근처에 있다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합니다.
두바이 페리 기본 정보
- 탑승 위치: 두바이 마리나몰 수상 교통 정류장
- 팜 주메이라 왕복 요금: 50디르함
- 운행 노선: 두바이 마리나 ↔ 팜 주메이라(아틀란티스) 왕복 / 두바이 마리나 ↔ 데이라 편도
- 소요 시간: 약 1시간 내외 (노선에 따라 상이)
- 편의시설: 화장실, 스낵 코너, 실외 후미 공간